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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인간관계

분노조절 피클

by 야무진 수성댁 2025. 10. 1.

어제 오후에 부엌에서 오이 피클을 담갔어요. 유리병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오이를 굵은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씻어서 착착 담았죠. 팔팔 끓인 식초물을 부을 때 나는 시큼한 냄새가 꼭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오이를 소금에 절여두는 걸 보고 있는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어요.

살다 보면 화가 불쑥 치밀어 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 끓어오르는 마음을 바로 터뜨리는 게 아니라, 이 오이처럼 잠시 소금에 절여두면 어떨까 하고요. '크게 숨 세 번 쉬기'라는 소금에 잠깐 담가서 감정의 물기를 쫙 빼는 거죠.

거기에 '저 사람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설탕이랑 '일단 그 자리를 피하기'라는 식초를 한두 스푼 넣고 하루만 딱 숙성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아마 위기의 순간에 이성을 되찾게 해주는 새콤한 '분노 조절 피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분노조절피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축 처지는 날에 어울리는 요리도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따뜻한 스튜예요.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그 무기력한 마음을 육수 삼아 붓는 거죠.

그리고 '이불 개기'나 '잠깐 동네 한 바퀴 돌기' 같은 아주 사소한 성취들을 당근이나 감자처럼 큼직하게 썰어 넣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오늘 고생한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허브를 살짝 뿌려서 향을 내주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뜨끈한 '의욕 충전 스튜'가 완성될 것 같아요.

힘 내게하는스튜 ^^

솔직히 말하면 그냥 재밌자고 하는 상상인데, 이게 은근히 도움이 될 때가 많더라고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야 할 나쁜 것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오늘은 이걸로 무슨 특별 요리를 해볼까?' 하고 생각의 방향을 살짝 바꾸는 거죠.

마치 내 마음의 요리사가 되는 것처럼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욱하고 화가 나거나 이유 없이 축 처지는 날에도 '아, 오늘 주재료가 들어왔구나' 하고 피식 웃게 되더라고요. 감정에 질질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요리사가 돼서 주도권을 잡는 느낌이랄까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듬고, 어떤 재료를 추가해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요리로 만들지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이웃님들은 어떠세요? 가끔 마음이 힘든 날, 나를 위해 어떤 특별 요리를 만들어 주시나요? 혹시 나만의 비밀 레시피가 있다면 저에게도 살짝 알려주세요. 이런 작은 지혜들을 서로 나누는 게 참 좋잖아요.

오늘도 마음 따뜻한 저녁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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